2021 코로나19, 예술로 기록

2021 COVID-19,  Art Record


코로나 범유행이 시작되었던 2020년을 정신건강 분야의 의료인 입장에서 기록한  수필
<한뼘의 벽을 사이에 두고>에 저는 일러스트레이션으로 참여 했습니다.

<한뼘의 벽을 사이에 두고>는 아래의  링크를 통해 보실 수 있습니다


▪️한미문학상

제작지원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Production Support: Arts Council Korea


일러스트 illustration

코로나블루 | Corona blue | 2021 | digital


코로나 블루

코로나가 퍼지기 시작한지 어느새 3년째,
예상보다 길었던 전염병 탓에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아팠고 생계의 위기에 처하기도 했습니다.
장기화된 단절로 인한 외로움과 불안은 누군가에겐 화살이 되기도 했고 누군가에겐 상처가 되기도 했습니다.

발터뫼르스의 소설<꿈꾸는 책들의 도시>에서는 작품을 들려주지 못하는 시인들이 땅에 구멍을 파고 들어가 있는 장면이 나옵니다. 코로나가 유행했던 지난 3년간 동시대의 예술가들도 작품을 발표할 무대나 극장을 잃은채 굴 속에 들어가 긴 겨울을 견뎌야 했습니다.
저 또한 이제 막 첫돌이 지난 아이를 돌보며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내야 했습니다.
수많은 가게들이 코로나로 인해 손님이 들지 않아 문을 닫아야 했습니다.
코로나 집단 감염이 일어난 요양.정신병원의 의료진과 환자들은 단체로 감금 당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한뼘의 벽을 사이에 두고 사람들은 서로를 마주할 수 없었습니다.

코로나 대유행이 시작됐던 2020년은 어릴적 보았던 애니메이션 ‘원더키디’의 시간적 배경이기도 합니다. 
컴퓨터. 핸드폰. 전기차. 고층빌딩들을 보면 어릴적 꿈꿔왔던 최첨단 미래도시 같습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질병, 환경 오염, 인간의 소외감 등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해결하지 못한 난제들이 더 무섭게 쌓이고 있습니다.

사람은 자신이 맺은 관계 속에서 ‘살아있다’는 존재감을 느낍니다.
그런데 코로나가 유행했던 지난 몇년간 사람들은 한 뼘의 벽을 사이에 두고 외로워졌습니다.
관계를 맺고 유지하는 것이 어려워졌고 우울해 하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그로인해 N번방과 같은 사이버 폭력및 가정폭력 문제들이 더 자주 일어났습니다.
환자들의 아픔을 돌봐야 했던 의사들조차 방호복을 사이에 두고 환자의 표정을 마주할 수 없었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죽지 못해 사는 사람들과 죽고 싶은 사람들, 죽었으나 아직 발견되지 않은 사람들이
자신의 굴 또는 관 속에서 유령처럼  숨어서 지내야 했습니다.

보르헤스의 단편 <죽지 않는 사람들>에서는 호메로스가 죽지 않고 영원히 사는 사람으로 등장합니다. 
이 이야기에서 호메로스는 뱀처럼 낮에는 땅에 구멍을 파고 들어가 있다가 해질무렵이면 나와 노을이 지는 것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립니다. 
이 이야기의 배경인 갠지스강 유역은 일년내내 기온이 높고 질병이 유행하기 쉬우며 오랜 세월동안 전쟁이 일어나고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이 지역의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그렇게 구멍을 파 놓은 듯한 집에 살고 있고 가난과 전쟁. 질병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지구 상의 특정 지역에서는  코로나로 인해 더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으며 죽어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죽지 않는 사람인 호메로스는 해질무렵이면 구멍에서 나와 노을을 보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가 썼던 ‘일리아드’와 ‘오딧세이’는 전쟁의 참혹함에 대한 눈물의 조각들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죽지 않는 사람들>에서 호메로스는 자신의 이야기를 알아줄 누군가를 애타게 기다립니다.
<꿈꾸는 책들의 도시>에서는 시집이 안 팔리는 시인들이 새로운 시를 발표하기 위해 굴에서 나옵니다.
그리고 아름다운 시를 노래하며 눈물을 흘립니다.

코로나가 저물어 가는 지금 시점에 저 또한 글과 그림을 발표하기 위해서 굴에서 나왔습니다.
지금 수 많은 예술가들이 자신의 작품을 알아줄 누군가를 만나고 싶어서 굴에서 나오는 중입니다.
죽지 않는 사람인 호메로스가 <일리아드>와 <오딧세이>를 남겼듯
코로나로 힘들었던 이 시간들도 예술가들의 다양한 작품으로 남겨질 것입니다.

제 그림을 보며 코로나로 힘들었던 지난 시간들을 떠올리시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 분들에게 ‘함께 고생 하셨습니다’ 라고 위로의 메세지를 전하고 싶습니다.

이제 코로나는 1급 감염병에서 제외 되었고, 확진자 격리도 없어졌습니다.
그동안 코로나로 인해 힘든 상황들을 견뎌내신분들 모두 수고 하셨습니다.
이제는 사람들로 북적대는 식당에서 밥을 먹고, 영화관에서 영화도 보고,
따뜻한 햇빛 속에서 함께 춤을 추는 소중한 일상이 이어지길 기대합니다.




<죽지 않는 사람들>에 관하여
보르헤스의 소설 ‘죽지 않는 사람들’에서 호메로스는 왜 죽지 않는 사람으로 이야기 속에 등장할까요?
그건 아마도 호메로스는 죽어도 그가 남긴 ‘ 일리아드’와 ‘오딧세이’ 가 누군가에게 영원히 기억될 수 있기 때문아닐까요?
소설 속에서 죽지 않는 사람인 호메로스를 만난 화자는 누구일까요?  단지 소설 속에만 등장하는 허구의 인물일까요?
저는 ‘죽지 않는 사람들’ 속의 화자가 작가인 ‘보르헤스’일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소설 제목이 ‘죽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죽지 않는 사람들’인 이유도 소설가인 보르헤스와 호메로스가 만났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마도 보르헤스가 생각하는 ‘죽지 않는 사람들’ 이란 누군가에게 기억될 작품을 만드는 예술가들 아닐까요?

저는 2700년전에 죽은 호메로스와 38년전에 죽은 보르헤스를 지금도 책으로 만나고 또 기억합니다.

아르헨티나어로 깨다. 깨우다 라는 말은 기억하다( recordar, recordarse)라는 말과도 같다고 합니다.
누군가에게 기억 되는한 죽지 않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르헤스가 호메로스를 통해 이야기 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또한 자신도 그렇게 되고 싶다는 바램으로 이 이야기를 썼던 것은 아닐지 궁금합니다.



인간의 삶은 이토록 짧아서 슬픈 것이지만, 이제는 사라진 누군가를 평생 기억하는 사람이 있기에  과거의 세계와 미래의 세계는 하나로 연결되는 것이다.
마치 같은 책을 읽는 두 눈동자가, 같은 기도문을 읊조리는 입술이 우리의 세계를 지속시키는 것과 같이 

-김연수  청춘의 문장들 p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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