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이 처음만난 바다

The sea where soop(our dauther) meet for the first time




브로콜리숲 BroccoliSoop

한 송이 브로콜리는 더 작은 브로콜리들로 이뤄진 숲 같습니다.
저희도 닮은 세 사람이 하나의 가정을 이뤄 ‘브로콜리숲’이 됐습니다.
가족이 함께 보낸 행복한 순간을 담았습니다.


@broccoli.soop

일러스트 illustration

숲이 처음만난 바다 | 2022 | risography | A3


︎ BUY  고사리잡화점


사진 Photograph

숲이 처음만난 바다 | 2022 | monochrome photograph | A4


순수한 첫경험

이제 막 세 돌을 맞이한 숲이에게 바다를 보여주고 싶어서 제주도로 첫 가족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숲이는 이번 여행을 통해 비행기도 처음 타보고 바다도 처음 보는 등 순수한 경험을 만끽할 수 있었습니다.
바다를 보고 신나하는 숲이를 보니 예전에 별다른 정보 없이 무작정 돌아다녔던 배낭여행들이 떠오르더군요.
배가 고프면 근처의 식당에 들어 갔고 의외로 맛있어서 행복했던 경험도 그 반대의 경험도 있었습니다.  야간 버스를 타고 새벽녘에 목적지에 도착하면 근처의 게스트 하우스를 무작정 찾아가 문을 두드리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정보가 워낙 많다 보니 어디를 가더라도 검색을 하게 되고 사진과 평점을 체크하게 됩니다.  검색해서 찾은 정보들로 수차례 시뮬레이션을 해보기도 하고 누군가의 사진을 보고 그대로 따라 하기도 하죠.  인스타그램에서 태그로 검색하면 다른 사람들이 같은 장소를 배경으로 복붙한듯한 사진들이 넘쳐납니다.

검색으로 찾은 돈까스 맛집으로 가면서 그런 순수한 경험에 대해 남편에게 이야기하고 있었더랬죠.
그런데 돈까스 맛집을 몇 미터 앞에 두고 화덕 피자집을 발견한 거예요.
갑자기 남편도 저도 화덕피자가 먹고 싶더라구요. 그래서 화덕 피자집으로 방향을 바꿨습니다.
화덕피자집에 가까이 다가가자 건물 외벽에 대문짝만하게 걸려있는 대머리 아저씨의 사진이 보였습니다. 사실 저는 대머리 아저씨들에 대한 편견이 있었습니다. 전문가 아니면 개그맨처럼 보인다고요.  불행하게도 사진은 후자에 가까워 보였습니다. 하지만 방금 전까지 여행을 통해 발견했던 순수한 첫경험에 대하여 남편에게 이야기를 하던터라 설령 개그맨이 하는 화덕피자집이라고 해도 맛에 대한 편견은 갖지 말자며 식당 안으로 당당히 들어갔지요.

하지만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더군요.
피자집의 커다란 TV 에선 대머리 아저씨가 출연했던 코메디 프로그램이 반복해서 나오고 있었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피자는 맛이 없었습니다.  치즈는 마트에서 파는 평범한 모짜렐라치즈였고 화덕피자도 더더욱 아니었습니다. 가격은 그에 비해 터무니없이 비쌌고요.

하지만 숲이가 피자를 아주 맛있게 먹었습니다.
천연덕스럽게 추천메뉴를 강요하는 개그맨 아저씨도 흥미로웠어요.
피자를 먹고난후, 숲이는 기분이 좋아져서 카운터 앞에서 춤을 추기도 했는데요.
개그맨 아저씨가 레크레이션 강사처럼 추임새를 잘 넣어 주셔서 너무 신나게 춤을 췄어요.

식사를 마치고 차로 돌아온 남편은 화덕 피잣집 이름으로 검색을 해보더군요.
역시나 맛에 대한 혹평이 난무했습니다. 만약에 검색을 먼저 해봤다면 절대 가지 않았을 거예요.
하지만 저는 아무런 정보 없이 시도했던 순수한 경험이어서 그런지 재밌었어요.
스스로 결정한 일의 결과라서 그 누구도 탓 할 수 없어서 그랬던 걸까요?
정보에 대한 기대가 없어서 실망감도 없었던 걸까요?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을 것 같습니다.

같은 공간에서 같은 음식을 먹더라도 맛에 대한 평가는 사람마다 다 다를 것 같습니다.
어떤 상황에 대한 판단은 늘 주관적인 것이지요. 순수한 첫경험은 그런 주관적인 판단을 극대화해줄 수 있기에 더욱 소중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요즘처럼 정보가 넘쳐나는 세상에서 순수한 첫경험을 하는 것도 쉽지 않은 것 같아요.  물론 정보를 가지고 시뮬레이션하면 실패할 가능성이 적어집니다.  하지만 100명이 있다면 그들의 취향과 경험. 그때의 상황과 기분 등에 따라 판단도 100가지라는 것.  남의 판단은 그저 참고만 하고 선택과 그에 따른 책임은 내 몫으로 남겨 두어요.  남이 알려준 방식을 쫒아서 좋은 결과를 얻었다고 해도 내가 결정한 방식으로 실패한 것만큼 큰 깨달음을 얻지는 못하니까요.

나이가 들면서 이미 누적된 경험치들로 인해 사람도 장소도 앞서 판단해 버릴 때가 있는데요.  이번 여행에서는 숲이가 익숙했던 것들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도록 도와주었답니다. (물론 숲이를 지켜보느라 놓친 것들도 많았겠지만요)
이전에도 여러 번 가봤던 제주도였지만 덕분에 아주 새롭고 짜릿했어요.
숲이가 너무나 신나 했던 월정리 바닷가에서의 기억을 오래 오래 곁에 두고 싶어서 리소프린트로 남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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